억지로 여러가지 이름을 붙여서 마음이다, 부처다, 중생이다 하였으나 이름에 얽매여 분별을 낼 걸이 아니다. 다 그대로 옳은 것이다. 그러나 한 생각이라도 일으키게 되면 곧 어그러진다.
强立種種名字 或心. 或佛 或衆生. 不可守名而生解 當體便是 動念卽乖(강립종종명자 혹심. 혹불 혹중생. 불가수명이생해 당체편시 동념즉괴)
세존께서 세곳에서 마음을 진하신것은 선祿의 뜻이요 한평생 말씀하신것은 교문敎門이니라.
그러므로 선禪은 부처님의마음이요, 교敎는 부처님의 말씀이다.
世尊三處傳心者爲禪旨. 一代所說者 爲敎門. 故 曰 禪是佛心 敎是佛語(세존삼처전심자 위선지. 일대소설자 위교문. 고 왈 선시불심 교시불어)
이 글에서 세 곳이란, 세곳에서 부처님께서 가섭존자에게만 보이신 뜻을 말합니다.
다자탑 앞에서 자리를 절반 나누어 앉으심이 첫째요, 영산회상에서 꽃을 들어보이심이 둘째요, 사라쌍수 아래에서 관 속으로부터 두 발을 내어 보이심이 셋째입니다. 이른바 가섭존자가 선禪의 등불을 따로 받았다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서산대사. 휴정休은 3세 되던 해 사월초파일에 아버지가 등불 아래에서 졸고있는데 한노인이 나타나 "꼬마스님을 뵈러왔다"고 하며 두손으로 어린 여신을 번쩍 안아 들고 몇 마디 주문을 외우며 머리를 쓰다듬은 다음 아이의 이름을 운학雲鶴이라 할것을 지시하였다. 그뒤 아명은 운학이 되었다.
9세에 어머니가 죽고이듬해 아버지가 죽게되자 안주목사 이사증李師曾을 따라 서울로 옮겨 성균관어서 3년동안 글과 무예을 익혔다.
과거를 보았으나 뜻대로 되지 않아 친구들과 같이 지리산의 화엄동(華嚴洞)·칠불동(七佛洞) 등을 구경하면서 여러 사찰에 기거하던 중, 영관대사(靈觀大師)의 설법을 듣고 불법(佛法)을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1540년(중종 35) 수계사(授戒師) 일선(一禪), 증계사(證戒師) 석희(釋熙)·육공(六空)·각원(覺圓), 전법사(傳法師) 영관을 모시고 계(戒)를 받았다.
그 뒤 영관으로부터 인가를 받고 운수(雲水)행각을 하며 공부에만 전념하다가 1549년(명종 4) 승과(僧科)에 급제하였고, 대선(大選)을 거쳐 선교양종판사(禪敎兩宗判事)가 되었다.
1589년(선조 22) ≪정감록 鄭鑑錄≫의 미신에 의하여 정여립(鄭汝立)이 왕위에 오른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려 역모(逆謀)를 꾀한 사건이 일어났는데, 이 역모에 가담한 요승 무업(無業)이 휴정과 유정(惟政)이 자신과 함께 역모에 가담하였다고 주장하여 투옥되었다.
그러나 그의 공초(供招)가 명백하였으므로, 선조는 무죄석방하면서 손수 그린 묵죽(墨竹) 한 폭을 하사하였다. 휴정은 그 자리에서 『경차선조대왕어사묵죽시운 敬次宣祖大王御賜墨竹詩韻』이라는 시를 지어 선조에게 올렸다. 이에 선조도 그의 시에 감동하여 한 수를 지었는데 ≪청허당집 淸虛堂集≫ 권수에 수록되어 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는 평양으로 피난하였다가 다시 의주로 피난하였다. 이 때 선조는 묘향산으로 사신을 보내어 나라의 위급함을 알리고 휴정을 불렀다.
노구를 무릅쓰고 달려온 휴정에게 선조는 나라를 구할 방법을 물었고, 휴정은 전국에 격문을 돌려서 각처의 승려들이 구국에 앞장서도록 하였다.
이에 제자 처영(處英)은 지리산에서 궐기하여 권율(權慄)의 휘하에서, 유정은 금강산에서 1,000여 명의 승군을 모아 평양으로 왔다.
그는 문도 1,500명의 의승을 순안 법흥사(法興寺)에 집결시키고 스스로 의승군을 통솔하였으며, 명나라 군사와 함께 평양을 탈환하였다.
선조는 그에게 팔도선교도총섭(八道禪敎都摠攝)이라는 직함을 내렸으나 나이가 많음을 이유로 군직을 제자인 유정에게 물려주고, 묘향산으로 돌아가 나라의 평안을 기원하였다.
그 뒤에도 여러 곳을 순력하다가 1604년 1월 묘향산 원적암(圓寂庵)에서 설법을 마치고 자신의 영정(影幀)을 꺼내어 그 뒷면에 “80년 전에는 네가 나이더니 80년 후에는 내가 너로구나(八十年前渠是我 八十年後我是渠).”라는 시를 적어 유정과 처영에게 전하게 하고 가부좌하여 앉은 채로 입적하였다. 나이 85세, 법랍 67세였다.
입적한 뒤 21일 동안 방 안에서는 기이한 향기가 가득하였다고 한다.
삼매의 어원은 삼마지(三麻地)다. 삼마지란 마음을 한곳에 둔다. 마음이 한곳에 집중되어 흐트러지지 않는 상태를 이른다 일반적으로 수행을 통해 마음이 분산되지 않고 어지러운 생각들이 사라져 편안하고 고요해짐을 삼매라고 한다. 수행이 삼매의 단계에 이르면 올바른 지혜가 생겨 진리에 도달한다고 한다. 따라서 불교는 삼매를 중시한다. 부처님은 삼매를 통해 깨달음을 얻으셨다. 부처님의 설법은 삼매에 든 다음에 이루어졌다는 사실에서 삼매의 상서로움을 엿 볼 수 있다.
규모가 크고 엄숙한 광경을 볼 때 "장엄하다"고 탄복한다. 또 의식이 웅장할 때 "장엄하다"고 한다. 그러나 장엄(莊嚴)이란 불교의 극락세계를 표현할 때 쓰는 용어임을 아는 이는 드물다. 장엄이란 '좋고 아름다운 것으로 국토를 꾸미는 것'을 말한다. 불교에서의 장엄은 단연 극락세계 아미타불의 국토이다.
마음과 마음으로 전한다고 할 때 "이심전심 이지"라는 말을 쓴다. 말도 하지 않았는데 서로 뜻이 통할 때도 "이심전심이야"라고 한다. 흔한 말로 '척하면 알았을 때' 도 '이심전심'이라고 한다. 문자가 아닌 마음으로 전한다.
시끌벅적하거나 전란(戰亂)이나 투쟁으로 끔찍히 흐트러진 현장을 "아수라장 같다" 또는 줄여서 "수라장이 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아수라장 또는 수라장이란 아수라(阿修羅)의 심술이 만들어 내는 피해 전장을 말한다. 아수라란 천(天),인(人),아수라,아귀(餓鬼),축생(畜生),지옥(地獄),중의 하나를 말한다. 아수라는 화를 잘내고 도전적이어서 전신(戰神)이라고도 한다
불교의 야단법석(野壇法席)은 사람들을 위해 야외에 법단을 차려놓고 하는 설법장을 말한다. 법당으로써 수용할 수 없는 숫자의 대중이면 자연 야단법석이 되어야 할 것이다. 불교가 최초로 법석을 편것은 녹야원에서이다. 갠지스강과 바라나스강이 갈라지는 삼각지에 그림처럼 펼쳐있는 녹야원, 이곳에서 부처님은 법석을 펼쳤다. 불단(佛壇)은 나무등걸이 아니면 작은 바위였을 것이다. 그야말로 야외 자연 그대로의 법석이다.
우리가 생활속에서 자주 쓰고 있는 면목은'체면' '남에게 드러낸 얼굴' 등으로 쓰인다. 하지만 불교에서는 '부모로부터 태어나기 전의 본래면목을 알면 깨달음을 얻는다'고 하여 모든사람이 지니고 있는 깨끗하고 맑은 진수(眞髓)를 일컫는 말로 '불성(佛性)'과 같이 쓰인다
우리가 생활속에서 자주 쓰고 있는 면목은'체면' '남에게 드러낸 얼굴' 등으로 쓰인다. 하지만 불교에서는 '부모로부터 태어나기 전의 본래면목을 알면 깨달음을 얻는다'고 하여 모든사람이 지니고 있는 깨끗하고 맑은 진수(眞髓)를 일컫는 말로 '불성(佛性)'과 같이 쓰인다
도구의 진의는 수행하는 스님이 불도를 닦기 위해 사용하는 기구를 말한다.
법주(法住)를 도와 의식을 진행하는 스님'옥바라지''음식라바지'사용. "뒷바라지를 잘해야 일이 순순히 풀린다"고 한다. 땀 흘려 얻어낸 성과나 큰 어려움의 극복에는 반드시 뒷바라지 한 배경이 있기 마련이다. 이렇게 흔히 쓰이는 절에서 재를 올릴때 법주를 도와 결전을 독속하고 가영(歌詠)을 부르는 스님으로부터 어원이 생겼다
'무진'과'장'으로 합성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무진이란 덕이 넓어서 무궁함을 뜻하고, 무진을 포함한 것을 장이라 한다."
불교가 말하는 탈락은 "벗어버린다"의 의미이다.
부처님이 제자들의 수행이 무르익었음을 인가해 줄 때 기별을 준다. 기별은 수기(授記)와 같은 말로 미래에 부처가 될 것임을 확인시켜주는 일이다.
투기란 원래 좋은 의미를 지녔다. 불교에서 '투기했다'고 할 때면 '기가 투합(投合)했다'라는 말의 변형이다. 스승으로부터 인가를 받는 것은 수도자의 최고 영예다.
다반사는 밥을 먹고 차를 마시는 등의 흔히 생기는 일을 말한다. 다반사의 일을'존경해서 드리는 마음'으로 승화시킨 예가 차례(茶禮)다. 우리는 한 해가 시작되는 날에 조상의 얼 앞에 모여 경헌히 밥을 드리고 차를 올린다. 이를 차례라고 한다. 차례를 지낸 다음 그 해의 서원과 각오를 서로 나눈다. 가을이 되어 풍년이 들면 감사한 마음으로 차를 다려 조상에 드린다. 그래서 추석이란 명절이 생겼다.
시다림은 공동묘지의 공포와 죽음 직후의 슬픔을 중생의 생사초월을 위한 큰 법문으로 승화시킨 숭고한 뜻이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쓰이는 '시달림'이란 단어는 불교의 '시다림'에서 시원되었다. 시다림은 범어의 시타바나를 음역한 것. 범어 시타는 '차가운'의 의미이고 바나는 숲의 의미여서 한림이라고 번역해 쓰기도 한다.
수리란 범어로 길상존이라는 뜻이다. '마하수리'의 마하는 '크다'는 뜻이므로 마하수리는 대길상이다. '수수리'의 수는 '지극하다'의 뜻이다. '사바하'는 '원만''성취'의 뜻이다. 따라서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를 이어 해석하면 '길상존이시여 길상존이시여 지극한 길상존이시여 원만, 성취하소서'가 된다. 이렇게 세번 외움으로써 임으로 짓는 업을 깨끗하게 한다는 진언이다. 입으로 짓는 업이라면 거짓말, 이간하는 말, 아첨하는 말, 남을 욕하는 말 등이 있다. 인간의 모든 잘못은 입으로부터 전달되고 입으로부터 익혀진다. 따라서 모든 공덕의 시작을 입을 잘 다스리는 데서부터 시작한다는 천수경의 근본취지는 매우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부처님이 이 세상에 나타남을 말한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이 땅에 오셨거나 미래에 미륵 부처님이 나올때를 출세라고 한다.
조선사칠에 이판승과 시판승의 구별이 있다. 이판이란 첨선하고 경전을 당론하고 수행하고 홍법포교하는 스님이다. 속칭 공부승이라고도 한다. 사판은 생산에 종사하고 절의 업무를 꾸려나가고 사무행정을 해나가는 스님들이다. 속칭 살림승이라고도 한다. 살림이란 절의 모든 사무와 재산관리를 통틀은 말이다. 이판과 사판은 그 어느 한 쪽이라도 없어서는 안되는 상호관계를 갖고 있다. 이판승이 없다면 부처님의 지혜광명이 이어질 수 없다. 사판승이 없다면 가림이 존속할 수 없다. 그런데 왜 이판사판은 '마지막'을 뜻하는 의미로 바뀌었을까? 조선이 불교를 억압하고 유교를 국교로 세우면서 당시 스님이 된다는 것은 마지막 신분계층이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시주란 본래 보시하는 사람을 말한다. 이 것이 근래에 와전되면서 '시주'자체로서 '보시하다'라는 의미로 바뀌었다. 따라서 시주는 보시로 보아도 될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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